200809_세종 아파트 구입기
0. 정확히 말하면 (동생의) 세종 아파트 구입기.
의사 결정과정에서 내 의견을 다수 반영했고, 아파트를 구입하는 프로세스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던 경험이어서 블로그에 기록을 남긴다.
1. 타임라인은
7.23 ~ 7.29 세종 아파트 구입 결정 및 2차례 임장(부모님, 동생)
7.30 물건 확보 및 계약금 10% 입금,
8.2 중도금 10% 입금 및 계약서 작성
9.28(예정) 잔금 80% 입금 및 소유권 이전등기
2. 동생과 부모님이 거주하고 있는 대전, 세종 쪽에서 아파트나 분양권을 사겠다는 상의를 상반기부터 해왔다. 부모님 명의의 대전 집을 상반기에 정리하면서 가족 모두 무주택인 상태였고, 이 상황에서 고를 수 있는 선택지 중 무엇이 가장 좋을지에 대해 고민을 해왔다. 생각했던 방식은
a. 피 주고 분양권 구입 - 대전 신축 물량들 중
b. 주담대(혹은 동생 명의의 보금자리론) 받아서 대전(둔산, 유성) 내지 세종 아파트 구입
c. 추첨제 청약
d. 경매 아파트 물건 구입
e. 재개발, 재건축 예상지 구입 정도
그 와중에 정부 부동산 대책으로 대전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어 주택담보 대출비율이 40%로 축소되었고, 다주택자 및 법인에 대한 보유세 증세가 이뤄졌다. 소위 말하는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리라는 분석들이 나왔다.
그리고 집권 여당 원내대표, 대선 유력주자, 청와대 발 세종 국회의사당 및 행정 기관 이전 관련 보도가 이어지면서 7월 세종시 아파트 시세가 갑작스레 뛰어오르기 시작. 자금이 세종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7월 현재 세종 아파트 가격대는 비교군인 서울, 대전(유성, 둔산 및 신축 물량), 분당, 판교, 광교, 과천 등을 감안했을 때 낮은 것으로 판단. b. 동생 명의 보금자리론(투기과열지구임에도 대출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6~70%))이 현재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라 생각됐고 예산 범위내의 아파트를 빠른 시일 내에 사기로 결정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서울 아파트값이 보금자리론 상한금액인 6억을 훌쩍 넘는 걸 보면서 시중에 풀린 돈들과 대전 청주 세종권 직장인들의 자금 동원 능력을 감안했을 때 한두달 내로 그 수준까지 빠르게 올라가리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기도 했다.
3. 하루 사이에 호가가 2~3천씩 오르는 장에서 물건을 잡아내는 건 신기한 경험이었다. 강둑에서 튀어오르는 연어를 기다리는 아사 직전의 곰이 된 느낌이랄까. 제 때 잡아채내지 못하면 영영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매물을 찾은 시간이 단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며칠 사이에 볼 수 있는 물건의 컨디션 차이가 꽤 크게 났고, 매도인들이 물건을 다시 회수해가서 호갱노노에 2주 전 매물만 떠있는 것을 보기도 했다. 또 자금 계획을 겨우 짜낸 뒤 계약금을 집어넣기로 한 매물이 눈 앞에서 다른 매수자에게 넘어가는 경험을 하기도.
잡으려던 물건을 놓치고 가족 모두 진이 빠진 상태였는데 다행스럽게도 같은 마을에서 적절한 가격대의 물건을 계약하게 될 수 있었다. 노부부가 사시던 아파트였는데 여러모로 좋은 조건의 집을 운 좋게 잡게 된 것 같다.
4. 이번에 세종아파트를 사면서 느낀 점을 정리해보자면.
a. 정확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 내 자금 능력에 대한 확실한 계산, 아파트 단지 및 동네, 향후 호재에 대한 분석
b. 의사결정은 단호해야 - 사기로 마음 먹었으면 바로 계약금 입금할 준비를 해야한다. 하룻밤이 지나니 매수할 수 없게 되었고 금액도 뛰었다
c. 부동산과의 커뮤니케이션 - 다수 부동산과 연락하면서 장 분위기를 알 수 있었고 물건들도 여럿 볼 수 있었다.
d. 체력 - 임장 다니는 것과 큰 금액을 집행하겠다는 의사결정은 체력을 어마어마하게 소모했다. 그나마 가족들이 발로 뛰고 나는 웹 서핑에 자금 계산하면서 머리만 쓰는 식으로 분담을 했는데도 계약 당일날엔 모두 탈진해버렸다.
5. 바로 전에 공유했던 부동산 대세 상승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될 것이라는 블로그 글이 20년 여름 현 시점에서 부동산 시장상황을 어느 측면 냉정하게 분석, 예측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세종은 가지고 있는 입지 및 가치 대비하여 타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이라 판단했고, 차후 기준금리 인상, 공급 확대를 통한 가격 하락 혹은 안정화가 이뤄질지라도 현재 구입한 가격 수준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증식 원리금 상환 방식을 택해서 동생 현금흐름만으로도 감당 가능한 금액대이기도 하고.
무주택은 부동산 시장에 대한 숏포지셔닝이고, 다주택은 롱포지셔닝이라고 하는 비유를 감안했을 때 우선 가족 차원에서는 중간 수준으로 맞췄다고 생각한다. 다음 스텝은 무주택자 포지션과 부모님, 내 명의를 놓고 또 가장 나은 방법을 찾아봐야지.
6. 부러우면서도 답답했던 점은 세종에서는 그래도 손을 뻗치면 아파트를 잡을 수 있었는데(이도 이번이 거의 마지막이 아닐까 생각이 들지만), 서울에서는 집안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30대 미혼 직장인 입장에서 아파트 구입이라는 결정을 내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 혹여 결혼을 한다 하더라도 여러 정책에서 빗겨나가기에 상실감이 크다. 소득기준 때문에 디딤돌대출, 보금자리론, 공공청약은 대상 외며, 가점제로 청약도 불가. 중도금 대출이 나오지 않는 9억원 이상 추첨 물량들은 부모님 명의의 서울 집에 살며 현금을 물려 받은 금수저 친구들이 잡아가더라. 연봉을 안 쓰고 모아봐야 제대로 된 방 한 칸 구하기도 어렵다는 인터넷 상의 분노도 이해가 가고.
정책이나 여러 현상이 있을 때 주어진 상황에서 어찌저찌 방법을 찾아보려고 하긴 하는데 노력해서 직장 얻고 나니 보이는 시장이 이러니 답답하긴 하다. 10년 넘게 걸릴 재개발을 기대하며 빌라를 기웃거리고 있긴 한데 이게 맞나 싶기도 하고.